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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전이 당깁니다. 저도 예외 없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면 겉은 눅눅하고 속은 질척해서 기대만큼 맛이 안 나올 때가 많았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한동안 몰랐는데, 반죽 비율과 가루 선택을 바꾸고 나서야 제대로 된 바삭함을 처음으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부침가루, 튀김가루, 결국 둘 다 아니었습니다
김치전 반죽을 만들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어떤 가루를 써야 하냐입니다. 제가 직접 부침가루, 튀김가루, 두 가지를 섞은 혼합, 이렇게 세 가지를 각각 써봤습니다.
부침가루(붙임가루)는 밀가루에 소금, 후추 등을 미리 배합해 놓은 제품입니다. 쉽게 말해 간이 이미 맞춰진 밀가루 베이스 혼합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먹을 때 가장 익숙하고 감칠맛도 진한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세 눅눅해졌습니다.
튀김가루는 글루텐 함량이 낮은 박력분에 팽창제를 섞어 만든 가루입니다. 여기서 팽창제란 반죽이 열을 받을 때 부풀어 오르게 해주는 성분으로, 덕분에 겉이 얇고 바삭하게 익습니다. 실제로 써보니 겉은 과자처럼 바삭했지만 속이 쫀득하지 않고 계란빵처럼 몽실몽실한 식감이 나왔습니다. 김치전이라기보다 김치빵에 가까웠습니다.
그럼 둘을 섞으면 장점만 남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기대를 가장 많이 했던 방법이었는데, 결과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겉이 살짝 더 바삭해지긴 했지만 튀김가루 특유의 부슬부슬한 식감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장점이 합쳐졌다기보다 단점도 함께 섞인 느낌이었습니다.
- 부침가루: 감칠맛 좋고 익숙한 맛, 단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눅눅해짐
- 튀김가루: 겉은 바삭하지만 속이 몽실몽실해 김치전 식감과 거리가 있음
- 혼합(부침+튀김): 기대와 달리 두 가루의 단점이 함께 나타남
감자 전분이 바꾼 식감, 반죽 비율이 핵심입니다
세 가지 가루로 실패를 거듭하다가 감자 전분을 섞어봤을 때 처음으로 제가 원하던 식감이 나왔습니다. 감자 전분이란 감자에서 추출한 순수 녹말로, 글루텐이 없어 반죽을 얇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찹쌀탕수육 껍데기처럼 단단하게 바삭하면서 속은 쫀득한, 그 두 가지가 한 번에 나왔습니다. 식은 뒤에도 바삭함이 유지되는 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만 감자 전분만 단독으로 쓰면 안 됩니다. 제가 해봤더니 반죽이 껌처럼 질겨지고, 식으면 돌처럼 딱딱해졌습니다. 글루텐이란 밀가루에 물이 닿을 때 형성되는 단백질 구조로, 반죽에 탄성과 부드러운 식감을 부여합니다. 감자 전분만 쓰면 이 글루텐이 없어 식감이 너무 거칠어지기 때문에, 밀가루 계열 가루와 반드시 함께 써야 합니다.
제가 찾아낸 반죽 비율은 종이컵 기준으로 이렇습니다. 김치 두 컵, 아무 밀가루 계열 가루(부침가루·튀김가루·밀가루 무관) 한 컵 반, 감자 전분 반 컵, 김치국물 한 컵, 차가운 물 한 컵입니다. 여기서 차가운 물이 중요합니다.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물을 쓰면 전분이 미리 호화(糊化)되기 시작합니다. 호화란 전분 입자가 물을 흡수해 풀처럼 불어나는 현상으로, 이 상태에서 반죽을 구우면 바삭하지 않고 질척해집니다. 반드시 차가운 물을 써야 바삭한 결과가 나옵니다.
완성된 반죽은 주르륵 흘러내릴 만큼 묽어야 합니다. 처음엔 너무 묽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 정도여야 반죽이 얇게 펴지고 바삭하게 익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또 반죽을 만들기 전에 김치의 수분 제거가 선행돼야 합니다. 김치를 꾹 짜서 국물을 충분히 빼고, 1.5~2cm 크기로 잘게 썰어주는 게 좋습니다. 크게 썰면 반죽이 잘 뭉치지 않고 김치의 신맛만 강해집니다.
굽는 법 하나 바꿨더니 결과가 달랐습니다
반죽을 제대로 만들어도 굽는 방법이 틀리면 결국 눅눅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대부분 팬이 완전히 달궈지기 전에 반죽을 올리는 실수를 합니다. 팬이 충분히 뜨겁지 않은 상태에서 반죽을 넣으면 튀겨지는 게 아니라 쪄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수분이 증기로 갇혀 바삭함 대신 눅눅함만 남습니다.
기름도 넉넉히 두르고 예열을 충분히 한 뒤에 반죽을 넣어야 합니다. 넣는 순서도 중요합니다. 반죽을 가운데부터 붓지 말고, 기름이 고여 있는 가장자리부터 두르듯이 넣고 중간으로 밀어서 펴주는 방식이 좋습니다. 그리고 중앙에 작은 구멍을 하나 남겨두면 기름이 골고루 배어들고 수분이 빠져나가는 통로가 생깁니다.
뒤집은 뒤 기름이 부족하다 싶을 때는 팬 가장자리에 두르지 말고 중앙의 구멍으로 직접 기름을 흘려넣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굽는 방법에 대한 참고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전통 조리법 연구에서도 전류 조리 시 충분한 기름 예열이 바삭한 식감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돼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저는 파전이나 부추전을 만들 때도 같은 방식을 씁니다. 부추전은 파보다 향이 부드럽고 풋풋한 맛이 있어서 담백하게 먹기 좋았고, 애호박전은 호박에서 은은한 단맛이 나와서 전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편이었습니다. 어떤 재료든 굽는 온도와 순서는 동일하게 적용했더니 결과가 훨씬 일정하게 나왔습니다.
한 가지 더 활용하기 좋은 재료가 있습니다. 보리새우를 조금 넣으면 풍미가 달라집니다. 보리새우는 건새우의 일종으로 열을 받으면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데, 많은 양을 넣지 않아도 전 전체의 맛이 한 단계 진해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건새우류는 100g당 단백질 함량이 60g을 웃돌아 감칠맛의 주요 원인이 되는 아미노산을 풍부하게 공급합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DB).
자주 묻는 질문
Q. 감자 전분 없이 전분류로 대체할 수 있나요?
A. 옥수수 전분으로 대체해 봤는데 결과가 조금 다릅니다. 옥수수 전분도 바삭함을 올려주긴 하지만, 감자 전분보다 식은 뒤 눅눅해지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가능하면 감자 전분을 쓰는 편이 낫습니다.
Q. 반죽이 너무 묽은 것 같은데 물을 줄여도 되나요?
A. 주르륵 흘러내리는 정도가 맞는 농도입니다. 반죽이 묽어야 전이 얇게 펴지고 바삭하게 익습니다. 반죽이 너무 되직하면 속이 두꺼워지고 수분이 빠져나가지 못해 눅눅해질 수 있습니다.
Q. 김치 국물을 꼭 넣어야 하나요, 물로만 해도 되나요?
A. 물로만 해도 되지만 김치 국물을 넣으면 간과 감칠맛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어 훨씬 맛이 깊어집니다. 제 경험상 국물을 빼면 전의 맛이 밋밋하게 느껴졌습니다. 김치를 짤 때 나온 국물을 그대로 활용하면 낭비 없이 쓸 수 있습니다.
Q. 파전이나 부추전도 같은 반죽 비율로 만들 수 있나요?
A. 저는 파전과 부추전에도 동일한 감자 전분 비율을 적용했습니다. 재료에서 나오는 수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파전은 반죽을 먼저 얇게 깔고 파를 위에 올리는 방식을 썼을 때 파 향이 더 잘 살았습니다. 기본 비율은 같되 재료 특성에 따라 올리는 방법을 조금 달리하면 됩니다.
결론
김치전이 눅눅하게 나왔던 이유를 돌아보면, 반죽 가루 선택도 문제였고 굽는 온도 관리도 안 됐던 게 함께 작용했습니다. 감자 전분을 밀가루 계열 가루와 섞고, 차가운 물로 묽게 만들고, 뜨겁게 예열된 팬에 가장자리부터 넣는 것. 이 세 가지를 지키고 나서야 비로소 집에서도 바삭한 김치전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전은 꼭 특별한 재료가 있어야 하는 음식이 아닙니다. 냉장고에 남은 김치가 있으면 김치전, 파가 있으면 파전, 부추가 있으면 부추전. 재료에 맞게 반죽만 잘 만들면 됩니다. 보리새우 같은 재료 하나를 더하면 맛이 한 단계 달라지는 경험도 해보시길 권합니다. 비 오는 날 특별히 장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끼가 나옵니다.
